가족 기업 소개

가족 기업 소개 > 5대 가문의 역사 > H. F. JOHNSON, JR.

H. F. JOHNSON, JR.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불과 28세에 H.F. Johnson, Jr은 300명의 고용 지속을 책임지는 500만 달러 규모 회사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안주하는 대신 그는 Johnson’s Wax를 만들었으며, 이는 당시 생활용품의 일반 명사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모험 정신

그는 최악의 대공황을 거치면서도 직원들의 해고 없이 회사를 이끌었으며, 1935년에 새로운 모험에 나서게 됩니다. 그의 관심은 카르나우바
야자나무였으며, 그 나무의 왁스는 당시에 당사의 모든 제품의 주요 성분이었습니다.

초기의 환경론자였던, H. F. Johnson은 카르나우바 야자나무와 그 놀라운 탄성에 매료되었습니다. 카르나우바 야자나무 왁스는 심한 가뭄에도 손상되지 않습니다. 열매는 먹을 수 있습니다. 줄기와 잎은 건축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뿌리는 의약품에 사용됩니다. 일부 브라질 사람들은 이 나무를 “생명의 나무”라고 부르며, 이 나무는 H. F. Johnson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그는 이 나무의 공급원을 보고 회사의 생존에 아주 중요한 이 나무의 지속 가능한 공급을 보장받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브라질 정글 안으로 비행기 탐험에 나섰니다.
그의 “카르나우바 원정”은 타임지에서 보도할 정도로 대담한 것이었습니다. 바다, 사막 및 정글을 지나야 했던 15,000마일의 여정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원정은 대성공이었습니다. 회사에 필요한 왁스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농장을 마련하였습니다.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영감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나중에 이 여행이 그의 삶을 바꾸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모험은 회사의 방향을 정한 많은 모험 중 하나였습니다.

창조성에 대한 노력

또 하나는 전국적인 광고를 하는 것은 미래의 물결이라고 그가 인식했다는 점입니다.
1930년대와 40년대의 유명한 라디오 쇼 Fibber McGee & Molly의 선지적인 후원을 통해 SC Johnson을 생활용품의 대명사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전국적으로 광고하는 것을 시도하기 오래전이며, 이를 통해 SC Johnson은 일반 가정의 대표적인 생활용품을 제공하는 회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H.F. 는 또한 전설적인 건축가 Frank Lloyd Wright에게 회사의 위스콘신 주 라신 본사의 혁신적인 건물 설계를 위임했습니다. “누구나 일반적인 건물은 지을 수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최고 사무실 건물을 짓고 싶습니다. 그 유일한 방법은 세계 최고의 건축가를 모셔오는 것입니다.”라고 Herbert는 말했습니다. SC Johnson 빌딩은 건축학 적으로도 걸작일뿐만 아니라 회사의 창조성 및 모험 정신의 영속적인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 정신은 Herbert와 회사에 활력을 불어 넣었으며 SC Johnson에 대한 그의 리더십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운을 북돋는 이해와 낙관주의

1960년대에 이와 같은 정신은 회사가 중요한 사회적 기여를 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1964년 세계 박람회를 위해 제작한 영화 “To Be Alive”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세계 박람회에 참여한 대부분 회사들이 산업 홀에 소규모의 전시를 제공한 반면 H. F. Herbert는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황금빛 구조물을 짓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1960년대 초의 세계를 상상해보십시오. 정치 및 사회적 대변동이 만연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암살되고 사람들은 핵전쟁을 두려워하며 베를린 장벽이 독일에 세워지고 베트남 문제가 대두되며 시민권 논쟁이 미국 전역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비관주의와 두려운 분위기에 맞서 Herbert는 평화, 이해 그리고 생존의 기쁨에 관한 영화 제작을 지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H.F.는 자신의 팀에 이를 제안했을 때, 팀원들은 프로젝트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위험하다는 점을 어필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말아야 하는 많은 이유들이 제기 되었습니다. Herbert는 반대자들의 눈을 직접 보면서, “여러분, 용감한 사람들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걸어 나갔습니다.

박람회에서 18분 짜리 영화가 개봉했을 때 비평가들과 청중들은 모두 찬사를 보냈습니다. 전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상상력이 뛰어나고 매우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아이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여주어, 편견이나 오만이 존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진정성, 사회적 발전 및 낙관주의의 특이한 조합 덕분에, 이 영화는 1964년 세계 박람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는 전 생애를 통해 일궈온, 오늘날 그의 가족 기업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Herbert의 독특하고 모험적인 비전의 완벽한 예시였습니다.